나무 할아버지
“기름 묻은 넓적한 접시들이”나무 할아버지의 시
- 기름 묻은 넓적한 접시들이 더운물 아래 잠긴다 미끄러운 등을 문지르면 달그락 소리가 씻기고 여럿이 비워 낸 사발을 차례로 엎어 놓는다 손등에 남은 거품이 저녁 바람에 사위어 갈 때 말간 굽마다 물방울이 맺힌다
- 겉봉의 모서리를 만진다 해거름이 마당을 쓸고 가고 서랍 속엔 접힌 종이 하나 먹빛이 제풀에 흐려질 때까지 그저 가만히 두었다 닿지 않아도 절로 깊어지는 자리가 있어 기름불 심지를 낮춘다
- 화분에 물을 준다 말이 없는 것에게 말을 거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 잎을 다 보내고 열매만 남겼다 덜어낸 것이 더 붉다
- 돌절구 물 속에 하늘빛이 고여 굳고 바람 한 줄기가 마른 풀포기를 스친다 저녁 짓는 연기는 보이지 않아도 마당귀 은행잎이 어둠을 조금 덜어낸다 토방에 벗어 둔 덧신에 찬 기운이 차오른다
- 쓸어 모으다 만 낙엽 한 줌 곁에 수수빗자루를 세워 둔다 마당귀 흙내가 조금 서늘해지고 담 너머 밥 뜸 드는 냄새가 잠시 머물다 간다 아직 불 켜지 않은 문간
- 주름이 늘었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쥐었던 것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