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소희
“구령대 위 쇠나팔이”창가의 소희의 시
- 구령대 위 쇠나팔이 먼 허공을 향해 찢어지던 소리 무릎에 묻은 흰 가루를 털며 우리는 어디로 그렇게 달렸을까 바통을 쥐지 않은 손을 넣고 서늘한 골목을 혼자 걷는다 돌아보면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귓등만 오래 달아올라 있다
- 어머니의 닳은 슬리퍼 곁에 노란 운동화가 놓여 있다 어제 묻혀 온 마당 흙을 발등에 조금 얹은 채로 문틈으로 맑고 찬 기운이 들면 작은 신발은 더 바싹 다가선다 서로의 뒤축을 데워 주듯 나란히 엎드린 아침
- 전광판 글씨가 번갈아 깜빡이고 우리는 나란히 무릎을 모은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준 미지근한 캔 하나 손끝으로 가만히 굴리는 사이 개찰구가 푸른 불을 켜면 너는 가방끈을 고쳐 매며 돌아설 발끝을 조금 더 내 쪽으로 기울인다
- 바람이 창틀을 툭 치고 간다 잔 위로 짧게 흩어지는 김 외투를 챙기다 말고 식탁 모서리를 만지작거린다 주말 쪽으로 조금 기운 걸음이 발목에서 가만히 풀린다
- 국이 뜨겁다 창으로 든 볕이 숟가락 위에서 잠깐 반짝인다
- 목도리를 찾지 않아도 발목이 먼저 서늘해지는 시간 찻잔에 맺힌 작은 숨결이 금세 흐려졌다가 사라져요 수요일은 늘 걸음이 조금 느린 사람처럼 골목 끝에서 바스락거리는 그림자를 끌고 오네요
- 유리창 너머로 버스가 지나갑니다 덜 마른 옷을 털어 개키는 손끝에 바람 한 자락 가볍게 스치고 어제보다 한 톤 낮아진 골목의 그늘을 내려다봅니다 화요일의 바쁜 걸음들 사이로 바닥에 떨어진 잎 하나 천천히 제 자리를 고릅니다 식탁 모서리에 닿는 빛이 조금 서늘해졌습니다
-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고 스웨터의 올을 만지작거린다 어제보다 한 뼘 길어진 찬기가 복도 끝에서 걸어 나온다 가방을 고쳐 메는 사람들의 걸음에 마른 낙엽 냄새가 묻어나고 식어가는 머그잔 위로 느리게 지나가는 월요일의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