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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해진 아침 공기 사이로 따스한 숨 한 모금 보냅니다. 그늘진 마음에 닿아 가만히 온기가 되기를 바라며.
- 구령대 위 쇠나팔이 먼 허공을 향해 찢어지던 소리 무릎에 묻은 흰 가루를 털며 우리는 어디로 그렇게 달렸을까 바통을 쥐지 않은 손을 넣고 서늘한 골목을 혼자 걷는다 돌아보면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귓등만 오래 달아올라 있다
- 골목 어귀를 지키던 흰 불빛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새어나오던 조그만 온기를 외투 깊숙이 쥐고 걸어왔습니다 밤새 식지 않은 캔 하나를 찬 이슬 맺힌 길목에 내려놓으며 말없이 어깨를 웅크린 당신에게 가만히 건네어 봅니다
- 서리 덜 깬 마당 한편에 절인 잎들이 차갑게 누워 있습니다 붉은 속을 켜켜이 채워 묵묵히 건네주는 손 두 뺨 위로 번지는 입김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엉깁니다 겨울을 건널 것들이 차곡차곡 어둠 속으로 묻힙니다
- 찬 바닥에 놓인 구두는 한쪽만 비스듬히 닳아 있습니다 새벽 공기가 가만히 와 닿는 주름진 가죽의 틈마다 어제의 바깥이 남아 있고 혼자 짊어졌을 무게를 차마 묻지 못하여 조용히 코를 모아 둡니다
- 기름 묻은 넓적한 접시들이 더운물 아래 잠긴다 미끄러운 등을 문지르면 달그락 소리가 씻기고 여럿이 비워 낸 사발을 차례로 엎어 놓는다 손등에 남은 거품이 저녁 바람에 사위어 갈 때 말간 굽마다 물방울이 맺힌다
- 어머니의 닳은 슬리퍼 곁에 노란 운동화가 놓여 있다 어제 묻혀 온 마당 흙을 발등에 조금 얹은 채로 문틈으로 맑고 찬 기운이 들면 작은 신발은 더 바싹 다가선다 서로의 뒤축을 데워 주듯 나란히 엎드린 아침
- 모두가 지나간 뒤에야 골목 끝 불이 들어왔습니다 어둠을 더듬어 오던 걸음이 잠시 멈칫할 만큼 환하지도 않은 주황빛이 시린 발등을 가만히 덮습니다 혼자 건너온 그 길은 헛되지 않았다는 듯 말없이 낮은 자리를 데워 줍니다
- 겉봉의 모서리를 만진다 해거름이 마당을 쓸고 가고 서랍 속엔 접힌 종이 하나 먹빛이 제풀에 흐려질 때까지 그저 가만히 두었다 닿지 않아도 절로 깊어지는 자리가 있어 기름불 심지를 낮춘다
- 전광판 글씨가 번갈아 깜빡이고 우리는 나란히 무릎을 모은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준 미지근한 캔 하나 손끝으로 가만히 굴리는 사이 개찰구가 푸른 불을 켜면 너는 가방끈을 고쳐 매며 돌아설 발끝을 조금 더 내 쪽으로 기울인다
- 창을 열어 두었습니다 들어오라고 무엇이든 오늘은 다 받겠다고
- 화분에 물을 준다 말이 없는 것에게 말을 거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 바람이 창틀을 툭 치고 간다 잔 위로 짧게 흩어지는 김 외투를 챙기다 말고 식탁 모서리를 만지작거린다 주말 쪽으로 조금 기운 걸음이 발목에서 가만히 풀린다
- 하루 중 가장 정직한 시간 잘한 일보다 미안한 일이 먼저 떠오릅니다
- 잎을 다 보내고 열매만 남겼다 덜어낸 것이 더 붉다
- 국이 뜨겁다 창으로 든 볕이 숟가락 위에서 잠깐 반짝인다
- 숨소리를 세다가 나도 잠이 듭니다 곁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 돌절구 물 속에 하늘빛이 고여 굳고 바람 한 줄기가 마른 풀포기를 스친다 저녁 짓는 연기는 보이지 않아도 마당귀 은행잎이 어둠을 조금 덜어낸다 토방에 벗어 둔 덧신에 찬 기운이 차오른다
- 목도리를 찾지 않아도 발목이 먼저 서늘해지는 시간 찻잔에 맺힌 작은 숨결이 금세 흐려졌다가 사라져요 수요일은 늘 걸음이 조금 느린 사람처럼 골목 끝에서 바스락거리는 그림자를 끌고 오네요
- 이미 없어진 빛이라도 지금 내게 닿으면 그건 있는 것입니다
- 쓸어 모으다 만 낙엽 한 줌 곁에 수수빗자루를 세워 둔다 마당귀 흙내가 조금 서늘해지고 담 너머 밥 뜸 드는 냄새가 잠시 머물다 간다 아직 불 켜지 않은 문간
- 유리창 너머로 버스가 지나갑니다 덜 마른 옷을 털어 개키는 손끝에 바람 한 자락 가볍게 스치고 어제보다 한 톤 낮아진 골목의 그늘을 내려다봅니다 화요일의 바쁜 걸음들 사이로 바닥에 떨어진 잎 하나 천천히 제 자리를 고릅니다 식탁 모서리에 닿는 빛이 조금 서늘해졌습니다
- 끓인 물을 따르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밤새 뒤척이던 이름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시간, 화요일의 푸른 빛은 떨어진 잎새 끝을 적시고 건네지 못한 한마디가 잔 바닥에 무겁게 멎습니다.
- 주름이 늘었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쥐었던 것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니
-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고 스웨터의 올을 만지작거린다 어제보다 한 뼘 길어진 찬기가 복도 끝에서 걸어 나온다 가방을 고쳐 메는 사람들의 걸음에 마른 낙엽 냄새가 묻어나고 식어가는 머그잔 위로 느리게 지나가는 월요일의 구름
- 창틀에 내려앉은 공기가 차갑습니다 식어버린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돌아오지 않을 요일을 셉니다 바깥은 마른 잎 지는 소리뿐 내일의 빛이 번지기 전에 적다 만 이름을 가만히 접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밤이 혼자 깊어집니다
- 새벽이 물러간 골목에 서늘한 볕이 먼저 듭니다. 마른 잎 구르는 소리에 일요일이 조용히 번져 와요. 덜 깬 공기 속에서 식은 찻잔을 쥐고, 차마 적지 못한 문장을 창가에 가만히 얹어 둡니다.
- 잘 지내냐고 묻고 싶은 밤 묻지 않는 것도 하나의 안부라 여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