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나의 길

한용운1879–1944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돌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내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쫓아갑니다 의 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내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

세상엔 길이 많지만 내 길은 둘뿐. 님에게 가는 길을 묻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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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님의 침묵』, 1926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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