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일곱 개의 층계

박인환1926–1956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니 지난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무엇이나 거리낌 없이 말했고 아무에게도 협의해 본 일이 없던 불행한 연대(年代)였다. 비가 줄줄 내리는 새벽 바로 그때이다. 죽어간 청춘이 땅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그러나 나는 뛰어들어 서슴없이 어깨를 거느리고 악수한 채 피 묻은 손목으로 우리는 암담한 일곱 개의 층계를 내려갔다. 『인간의 조건』의 앙드레 말로 『아름다운 지구(地區)』의 아라공 모두들 나와 허물없던 우인 황혼이면 피곤한 육체로 우리의 개념이 즐거이 이름 불렀던 ‘정신과 관련의 호텔’ 에서 말로는 이 빠진 정부(情婦)와 아라공은 절름발이 사상과 나는 이들을 응시하면서…… 이러한 바람의 낮과 애욕의 밤이 회상의 사진처럼 부질하게 내 눈앞에 오고 간다. 또 다른 그날 가로수 그늘에서 울던 아이는 옛날 강가에 내가 버린 영아(嬰兒) 쓰러지는 건물 아래 슬픔에 죽어가던 소녀도 오늘 환영처럼 살았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라를 애태우는지 분별할 의식조차 내게는 없다. 시달림과 증오의 육지 패배의 폭풍을 뚫고 나의 영원한 작별의 노래가 안개 속에 울리고 지난날의 무거운 회상을 더듬으며 벽에 귀를 기대면 머나먼 운명의 도시 한복판 희미한 달을 바라 울며 울며 일곱 개의 층계를 오르는 그 아이의 방향은 어디인가.

지난날을 눈 감고 되짚으니 하루하루가 무서웠다는 고백. 전쟁을 지나온 사람의 자기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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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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