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불행한 신

박인환1926–1956

오늘 나는 모든 욕망과 사물에 작별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친한 죽음과 가까워집니다. 과거는 무수한 내일에 잠이 들었습니다. 불행한 신 어데서나 나와 함께 사는 불행한 신 당신은 나와 단 둘이서 얼굴을 비벼대고 비밀을 터놓고 오해나 인간의 체험이나 고절(孤絶)된 의식에 후회치 않을 것입니다. 또 다시 우리는 결속되었습니다. 황제의 신하처럼 우리는 죽음을 약속합니다. 지금 저 광장의 전주(電柱)처럼 우리는 존재됩니다. 쉴 새 없이 내 귀에 울려오는 것은 불행한 신 당신이 부르시는 폭풍입니다. 그러나 허망한 천지 사이를 내가 있고 엄연히 주검이 가로놓이고 불행한 당신이 있으므로 나는 최후의 안정을 즐깁니다.

모든 욕망과 작별한 날, 죽음과 더 친해지는 마음. 불안한 시대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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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5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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