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오감도 시제14호

이상1910–1937

고성(古城)앞에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모자를벗어놓았다. 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달아서는내힘과거리껏팔매질쳤다. 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 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이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 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 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 공중을향하여놓인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 별안간걸인은율률(慄慄)한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 나는벌써기절하였다. 심장이두개골속으로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 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 내이마에는싸늘한손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워지지않았다.

고성 앞 풀밭에 벗어 둔 모자, 그 속에 돌을 던져 넣는 걸인. 역사의 망령과 마주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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