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종말

박인환1926–1956

생애를 끝마칠 임종의 존엄을 앞두고 정치가와 회색 양복을 입은 교수와 물가지수를 논의하던 불안한 샹들리에 아래서 나는 웃고 있었다. 피로한 인생은 지나(支那)의 벽처럼 우수수 무너진다. 나도 이에 유형(類型)되어 나의 종말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숨 가쁜 호흡은 끊기지 않고 의식은 죄수와도 같이 밝아질 뿐 밤마다 나는 장미를 꺾으러 금단의 계곡으로 내려가서 동란을 겪은 인간처럼 온 손가락을 피로 물들이어 암흑을 덮어주는 월광을 가리키었다. 나를 쫓는 꿈의 그림자 다음과 같이 그는 말하는 것이다. ……지옥에서 밀려나간 운명의 패배자 너는 또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처녀의 손과 나의 장갑을 구름의 의상(衣裳)과 나의 더럽힌 입술을…… 이런 유행가의 구절을 새벽녘 싸늘한 피부가 나의 육체와 마주칠 때까지 노래하였다. 노래가 멈춘 다음 내 죽음의 막이 오를 때 오 생애를 끝마칠 나의 최후의 주변에 양주값을 구두값을 책값을 네가 들어갈 관(棺)값을 청산하여 달라고 (그들은 사회의 예절과 언어를 확실히 체득하고 있다) 달려든 지난날의 친우들. 죽을 수도 없고 옛이나 현재나 변함이 없는 나 정치가와 회색 양복을 입은 교수의 부고(訃告)와 그 상단에 보도되어 있는 어제의 물가시세를 보고 세 사람이 논의하던 그 시절보다 모든 것이 천 배 이상이나 앙등되어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허나 봄이 되니 수목은 또다시 부풀어 오르고 나의 종말은 언제인가 어두움처럼 생과 사의 구분 없이 항상 임종의 존엄만 앞두고 호수의 물결이나 또는 배처럼 한계만을 헤매이는 지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자 이젠 얼굴도 이름도 스스로 기억치 못하는 영원한 종말을 웃고 울며 헤매는 또 하나의 나.

임종의 존엄 앞에 모인 정치가와 교수들. 생애의 끝을 풍자적으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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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5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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