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옛날의 사람들에게

박인환1926–1956

─ 물고작가(物故作家) 추도회의 밤에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불행하였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즐거운 말이 없었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사랑해 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해방이 되고 하늘에 자유의 깃발이 퍼덕거릴 때 당신들은 오랜 고난과 압박의 병균에 몸을 좀 먹혀 진실한 이야기도 사랑의 노래도 잊어버리고 옛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이 죽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호흡이 지금 끊어졌다 해도 거룩한 정신과 그 예술의 금자탑은 밤낮으로 나를 가로막고 있으며 내 마음이 서운할 때에 나는 당신들이 만든 문화의 화단 속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푸른 시그널 우리는 그 불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당신들의 유지를 받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들이여 가난과 고통과 멸시를 무릅쓰면서 당신들의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승리가 온 것인지 패배가 온 것인지 그것은 오직 미래만이 알며 남이 있는 우리들은 못 잊는 이름이기에 당신들 우리 문화의 선구자들을 이 한자리에 모셨습니다.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불행하였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즐거운 말이 없었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사랑해 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허나 지금 당신들은 불행하지 않으며 우리의 말은 빛나며 오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당신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작가들을 추도하는 밤. 살아서 불행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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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56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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