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석양구

이장희1900–1929

바람소리는 아니고 실낱 같은 소리가 있어 푸른 잎사귀 너머로 나직하게 나직하게 들리도다 멀리서 부르는 꿈노랜지 야릇한 소리는 끊임없이 고운 향기에 녹아들어 쓸쓸한 이 가슴에 사무치어라. 가을에 속삭이는 물결같이 풋어린 설움이 흔드는 대로 나도 몰래 들가의 지름길을 보리심은 언덕으로 오르나니 보아라, 새까만 큰 바위 사이에 높이 받들은 성(聖) 마리아, 새맑은 모래 위에 꿇앉으며 우러르고 꾸부린 수녀(修女)들을 두 팔을 가슴위에 맞대이고 끝없이 기리는 독경(讀經)의 소리 혹(或)시 떨리고 혹(或)시 그윽하여 수녀(修女)들은 성상(聖像) 밑에 깃들이도다 오, 신앙(信仰)의 기쁨이여 넘치는 영광(榮光)에 젖은 수녀(修女)들의 소리여 나의 고달픈 영(靈), 거칠은 몸은 무거운 묵시(默示)에 느껴울다. 어느덧 늦은 바람은 한숨짓고 빗발 같은 사양(斜陽)을 가로받은 교당(敎堂)의 붉은 벽돌, 둥그런 유리창(琉璃窓)은 갸륵한 금(金)빛에 빛나여라. 아, 지금 수녀(修女)들의 고운 소리는 동산 넘어 깊어도 사라지고 물같이 갈앉은 모래언덕은 속 아픈 명상(瞑想)에 저물어 간다.

저녁 언덕에서 들려오는 수녀들의 기도 소리. 고달픈 마음이 노을 속 교당 앞에서 고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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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2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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