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노변의 애가

오일도1901–19461번 읽힘

밤새껏 저 바람 하늘에 높으니 뒷산에 우수수 감나뭇잎 하나도 안 남았겠다. 계절(季節)의 조락(凋落), 잎잎마다 새빨간 정열(情熱)의 피를 마을 아이 다 모여서 무난히 밟겠구나. 시간(時間) 좇아 약속(約束)할 수 없는 오 ― 나의 파종(破鐘)아 울적(鬱寂)의 야공(夜空)을 이대로 묵수(默守)할 것가! 구름이 끝 열규(熱叫)하던 기러기의 한 줄기 울음도 멀리 사라졌다. 푸른 나라로 푸른 나라로 ― 고요한 노변(爐邊)에 홀로 눈감으니 향수(鄕愁)의 안개비 자욱히 앞을 적시네. 꿈속같이 아득한 옛날 오 ― 나의 사랑아 너의 유방(乳房)에서 추방(追放)된 지 내 이미 오래라. 거친 비바람 먼 사막(沙漠)의 길을 숨가쁘게 허덕이며 내 심장(心臟)은 찢어졌다. 가슴에 안은 칼 녹스는 그대로 오 ― 노방(路傍)의 죽음을 어이 참을 것가! 말없는 냉회(冷灰) 위에 질서(秩序)없이 글자를 따라 모든 생각이 떴다 ― 잠겼다 ― 또 떴다. ― 앞으로 흰 눈이 펄펄 산야(山野)에 나리리라 ― 앞으로 해는 또 저물리라.

'노변'은 화롯가. 늦가을 밤 식은 재 위에 글자를 끄적이며 지난날을 곱씹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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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원』, 193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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