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병원

윤동주1917–1945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病院) 뒷뜰에 누워, 젊은 여자(女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女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 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醫師)는 젊은이의 병(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試鍊), 이 지나친 피로(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女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花壇)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꼽고 병실(病室) 안으로 살어진다. 나는 그 여자(女子)의 건강(健康)이— 아니 내 건강(健康)도 속(速)히 회복(回復)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 12)

의사도 모르는 아픔을 안고, 낯선 이의 회복까지 함께 빌어 보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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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 1940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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