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부끄럼 없는 삶을 노래한 시인. 광복을 반년 앞두고 스물일곱에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서시낭송 있음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별 헤는 밤낭송 있음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자화상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 쉽게 씨워진 시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참회록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십자가쫓아오든 햇빛인데
- 또 다른 고향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길잃어 버렸읍니다.
- 새로운 길내를 건너서 숲으로
- 무서운 시간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 소년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저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가지 우에 하늘이 펼처 있다. 가만이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쓰서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少年)은 황홀이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 병원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병원(病院) 뒷뜰에 누워, 젊은 여자(女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女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 간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 팔복— 마태복음(福音) 오장(五章) 삼(三)—십이(十二) —
- 눈 감고 간다태양(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 바람이 불어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 흰 그림자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 간판 없는 거리정거장(停車場) 플랫폼에
- 돌아와 보는 밤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괴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 사랑스런 추억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停車場)에서
- 슬픈 족속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 햇빛·바람손가락에 침발러
- 코스모스청초(淸楚)한 코스모스는
- 거짓부리똑, 똑, 똑,
- 겨울처마 밑에
- 고향집(만주에서 불은)
- 굴뚝산골작이 오막사리 낮은 굴뚝엔
- 귀뚜라미와 나와귀뜨라미와 나와
- 기왓장 내외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 눈지난밤에
- 둘다,바다도 푸르고
- 만돌이전보대 있는데서
- 무얼 먹고 사나바닷가 사람
- 반디불가자 가자 가자
- 버선본어머니
- 병아리「뾰, 뾰, 뾰
- 비행기머리에 푸로페라가,
- 빗자루요오리 조리 베면 저고리 되고
- 사과붉은사과 한개를 아버지 어머니
- 산울림까치가 울어서
- 애기의 새벽우리집에는
- 조개껍질아롱아롱 조개껍대기
- 참새가을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
- 창구멍바람부는 새벽에 장터가시는
- 편지누나!
- 할아버지할아바지,
- 해바라기 얼굴누나의 얼굴은
- 햇비아씨처럼 나린다
- 호주머니엻을것없서,
- 가슴 1소리 없는 북,
- 가슴 2불 꺼진 화(火)독을
- 거리에서달밤의 거리
- 고추밭시들은 잎새속에서
- 곡간산들이 두 줄로 줄달음질치고
- 공상공상(空想)
- 그 여자함께핀 꽃에 처음익은 능금은
- 꿈은 깨어지고잠은 눈을 떴다
- 남쪽하늘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 눈오는 지도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것처럼 창(窓)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地圖)우에 덮인다. 방(房)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壁)과 천정(天井)이 하얗다. 방(房)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歷史)처럼 홀홀이 가는것이냐, 떠나기전(前)에 일러둘 말이 있든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 갈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일년(一年) 열두달 하냥 내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 달같이연륜(年輪)이 자라듯이
- 달밤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 또 태초의 아침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 래일은 없다(어린마음의물은 ──)
- 명상가츨가츨한 머리칼은 오막살이 처마끝,
- 모란봉에서모란봉모란봉(牡丹峯)에서
- 못자는밤하나, 둘, 셋, 넷
- 바다실어다 뿌리는
- 밤오양간 당나귀
- 봄봄이 혈관(血管)속에 시내처럼 흘러
- 비둘기안아보고싶게 귀여운
- 비ㅅ뒤「어― 얼마나 반가운비냐」
- 비로봉만상(萬象)을
- 빨래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 사랑의 전당순(順)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든 것이냐?
- 산골물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 산림시계(時計)가 자근자근 가슴을 따려
- 산상거리가 바둑판처럼 보이고,
- 산협의 오후내 노래는 오히려
- 삶과 죽음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序曲)을 노래하였다.
- 새벽이올때까지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 소낙비번개, 뇌성, 왁자지근 뚜다려
- 식권식모는 젊은아히들에게.
- 아우의 인상화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 가을밤구즌비 나리는 가을밤
- 아침휙, 휙, 휙,
- 야행정각(正刻)! 마음이 앞은데있어 고락(膏藥)을붗이고
- 양지쪽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땅 봄바람이
- 어머니젖을 빨려 이마음을 달래여주시오.
- 오후의 구장늦은봄기다리든토요일(土曜日)날.
- 울적처음 피워본 담바맛은
- 유언후어—ㄴ한 방(房)에
- 이런날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 이별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 이적발에 터부한 것을 다 빼어 바리고
- 장이른 아침 아낙네들은 시들은 생활(生活)을
- 종달새즐드즌 거리의뒷골목이
- 창쉬는 시간(時間)마다
- 창공그 여름날
- 초한대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 태초의 아침봄날 아츰도 아니고
- 트루게네프의 언덕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 때 세 소년(少年)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 풍경봄바람을 등진 초록빛 바다
- 한난계싸늘한 대리석(大理石) 기둥에 목아지를 비틀어맨 한난계(寒暖計),
- 황혼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 황혼이 바다가 되어하로도 검푸른 물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