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한난계

윤동주1917–1945

싸늘한 대리석(大理石) 기둥에 목아지를 비틀어맨 한난계(寒暖計), 문득 들여다 볼수 있는 운명(運命)한 오척육촌(五尺六寸)의 허리 가는 수은주(水銀柱), 마음은 유리관(琉璃管)보다 맑소이다. 혈관(血管)이 단조(單調)로워 신경질(神經質)인 여론동물(輿論動物), 가끔 분수(噴水)같은 냉(冷)침을 억지로 삼키기에 정력(精力)을 낭비(浪費)합니다. 영하(零下)로 손구락질 할 수돌네 방(房)처럼 치운 겨울보다 해바라기 만발(滿發)한 팔월교정(八月校庭)이 이상(理想)곺소이다. 피끓을 그날이——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세올시다. 동저고리 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 이렇게 가만 가만 혼자서 귓속이야기를 하였읍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마도 진실(眞實)한 세기(世紀)의 계절(季節)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역사(歷史)같은 포지슌을 지켜야 봅니다.

대리석 기둥에 매달린 한난계에 자신을 비춘 시. 뜨거운 날을 기다리며 역사의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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