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트루게네프의 언덕

윤동주1917–1945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 때 세 소년(少年)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재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아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등(等) 폐물(廢物)이 가득하였다. 둘재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재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充血)된 눈, 색(色)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襤褸),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少年)들을 삼키였느냐! 나는 측은(惻隱)한 마음이 움직이였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時計), 손수건, ……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勇氣)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거릴뿐이었다. 다정(多情)스레 이야기나 하리라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재 아이가 충혈(充血)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 볼뿐이었다. 둘째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아이도 그러할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相關)없다는듯이 자기(自己)네 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 갔다. 언덕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黃昏)이 밀려들뿐

고갯길에서 만난 세 소년 거지에게 끝내 아무것도 건네지 못한 나. 부끄러움을 정직하게 적은 산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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