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쉽게 씨워진 시

윤동주1917–1945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가?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씨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일본 유학 중 남의 나라 작은 방에서 쓴 시. 자신에게 내미는 손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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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낱장 원고, 1942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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