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비를 타고

이상화1901–1943

사람만 다라와질 줄로 알았더니 필경에는 믿고 있던 하늘까지 다라와졌다. 보리가 팔을 벌리고 달리다가 달리다가 이제는 곯아진 몸으로 목을 댓자나 빠주고 섰구나! 반갑지도 않은 바람만 냅다 불어 가엽게도 우리 보리가 달증이 든 듯이 노랗다. 풀을 뽑느니 이랑에 손을 대 보느니 하는 것도 이제는 헛일을 하는가 싶어 맥이 풀려만 진다. 거름이야 죽을 판 살 판 거루어 두었지만 비가 안 와서 - 원수 놈의 비가 오지 않아서 보리는 벌써 목이 말라 입에 대지도 않는다. 이렇게 한 창 동안만 더 간다면 그만 - 그만이다, 죽을수 밖에 없는 노릇이구나! 하늘아, 한 해 열 두 달 남의 일 해주고 겨우 사는 이 목숨이 곯아 죽으면 네 맘에 시원할 게 뭐란 말이냐. 제발 빌자! 밭에서 갈잎 소리가 나기 전에 무슨 수가 나주어야 올해는 그대로 살아 나가 보세!

가뭄에 타들어 가는 보리밭 앞에서 하늘에 따지는 농부의 목소리. 절박함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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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28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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