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회상의 긴 계곡

박인환1926–1956

아름답고 사랑처럼 무한히 슬픈 회상의 긴 계곡 그랜드 쇼처럼 인간의 운명이 허물어지고 검은 연기여 올라라 검은 환영이여 살아라. 안개 내린 시야에 신부의 베일인가 가늘은 생명의 연속이 최후의 송가와 불안한 발걸음에 맞추어 어데로인가 황폐한 토지의 외부로 떠나가는데 울음으로써 죽음을 대치하는 수없는 악기들은 고요한 이 계곡에서 더욱 서럽다. 강기슭에서 기약할 것 없이 쓰러지는 하루 만의 인생 화려한 욕망 여권(旅券)은 산산이 찢어지고 낙엽처럼 길 위에 떨어지는 캘린더의 향수를 안고 자전거의 소녀여 나와 오늘을 살자. 군인이 피워 물던 물뿌리와 검은 연기의 인상과 위기에 가득 찬 세계의 변경(邊境) 이 회상의 긴 계곡 속에서도 열을 지어 죽음의 비탈을 지나는 서럽고 또한 환상에 속은 어리석은 영원한 순교자. 우리들.

사랑처럼 무한히 슬픈 회상의 계곡. 무너지는 운명을 쇼처럼 바라보는 쓸쓸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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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51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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