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호랑나비

정지용1902–1950

화구(畵具)를 메고 산(山)을 첩첩(疊疊) 들어간 후 이내 종적(踪跡)이 묘연(杳然)하다 단풍(丹楓)이 이울고 봉(峯)마다 찡그리고 눈이 날고 영(嶺) 우에 매점(賣店)은 덧문 속문이 닫히고 삼동(三冬)내 ― 열리지 않었다 해를 넘어 봄이 짙도록 눈이 처마와 키가 같었다 대폭(大幅) 캔바스 우에는 목화(木花)송이 같은 한떨기 지난해 흰 구름이 새로 미끄러지고 폭포(瀑布) 소리 차즘 불고 푸른 하눌 되돌아서 오건만 구두와 안ㅅ신이 나란히 노힌채 연애(戀愛)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날밤 집집 들창마다 석간(夕刊)에 비린내가 끼치였다 박다(博多) 태생(胎生) 수수한 과부(寡婦) 흰얼골 이사 준양(准陽) 고성(高城)사람들 끼리에도 익었건만 매점(賣店) 바깥 주인(主人) 된 화가(畵家)는 이름조차 없고 송화(松花)가루 노랗고 뻑 뻑국 고비 고사리 고부라지고 호랑나븨 쌍을 지여 훨 훨 청산(靑山)을 넘고.

산속 매점에서 사라진 화가와 과부의 이야기. 호랑나비 쌍이 청산을 넘는 산문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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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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