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산촌의 여름 저녁

한용운1879–1944

산 그림자는 집과 집을 덮고 풀밭에는 이슬 기운이 난다 질동이를 이고 물짓는 처녀(處女)는 걸음걸음 넘치는 물에 귀밑을 적신다. 올감자를 캐여 지고 오는 사람은 서쪽 하늘을 자주 보면서 바쁜 걸음을 친다. 살진 풀에 배 부른 송아지는 게을리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다. 등거리만 입은 아이들은 서로 다투어 나무를 안아 들인다. 하나씩 둘씩 돌아가는 가마귀는 어데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산 그림자 덮이는 여름 저녁, 물 긷는 처녀와 감자 캐는 사람, 게으른 송아지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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