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지반정경

이상화1901–1943

─ 파계사(把溪寺) 용소(龍沼)에서 능수버들의 거듭 포개인 잎 사이에서 해는 주등색(朱橙色)의 따사로운 웃음을 던지고 깜푸르게 몸꼴 꾸민, 저편에선 남모르게 하는 바람의 군소리 ─ 가만히 오다. 나는 아무 빛갈래도 없는 욕망과 기원으로 어디인지도 모르는 생각의 바다 속에다 원무 추는 영혼을 뜻대로 보내며 여름 우수에 잠긴 풀 사잇길을 방만스럽게 밟고 간다. 우거진 나무 밑에 넋빠진 네 몸은 속마음 깊게, 고요롭게 미끄러우며 생각에 겨운 눈물과 같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빈꿈을 얽매더라.

파계사 용소에서 본 여름 연못 풍경. 능수버들 사이로 생각이 바다처럼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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