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초가

이육사1904–1944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고성(古城)같이 둘러싼 산(山)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黃昏)이 묻혀오면 초가(草家)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故鄕)을 그린 묵화(墨畵) 한 폭 좀이 쳐. 띄엄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 뺨 위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 줄에 비가 오면 풍년(豊年)이 든다더니 앞내강(江)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 벌러 항구(港口)로 흘러간 몇 달에 서릿발 잎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北極)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洞里)의 밀고자(密告者)인 강(江)물조차 얼붙는다. — 유폐(幽廢)된 지역(地域)에서 —

호롱불 켜진 초가 마을의 옛 풍경이, 떠난 사람과 얼어붙는 겨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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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판』, 1938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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