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거짓 이별

한용운1879–1944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 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들어가는 두 볼의 도화(桃花)가 무정한 봄바람에 몇 번이나 스쳐서 낙화(落花)가 될까요 회색이 되어가는 두 귀밑의 푸른 구름이 쪼이는 가을볕에 얼마나 바래서 백설(白雪)이 될까요 머리는 희어가도 마음은 붉어갑니다 피는 식어가도 눈물은 더워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바다엔 물결이 뛰놀아요 이른바 거짓 이별이 언제든지 우리에게서 떠날 줄만은 알아요 그러나 한 손으로 이별을 가지고 가는 날은 또 한 손으로 죽음을 가지고 와요

잠시뿐이라 믿는 이별도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머리는 희어가도 마음은 붉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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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님의 침묵』, 1926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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