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고향에 가서

박인환1926–1956

갈대만이 한없이 무성한 토지가 지금은 내 고향. 산과 강물은 어느 날의 회화(繪畵) 피 묻은 전신주 위에 태극기 또는 작업모가 걸렸다. 학교도 군청도 내 집도 무수한 포탄의 작렬과 함께 세상엔 없다. 인간이 사라진 고독한 신의 토지 거기 나는 동상처럼 서 있었다. 내 귓전엔 싸늘한 바람이 설레이고 그림자는 망령과도 같이 무섭다. 어려서 그땐 확실히 평화로웠다. 운동장을 뛰다니며 미래와 살던 나와 내 동무들은 지금은 없고 연기 한 줄기 나지 않는다. 황혼 속으로 감상 속으로 차는 달린다. 가슴속에 흐느끼는 갈대의 소리 그것은 비창(悲愴)한 합창과도 같다. 밝은 달빛 은하수와 토끼 고향은 어려서 노래 부르던 그것뿐이다. 비 내리는 사경(斜傾)의 십자가와 아메리카 공병(工兵)이 나에게 손짓을 해준다.

갈대만 무성한 땅이 이제 내 고향. 전쟁이 바꿔 놓은 고향을 찾아갑니다.

이 시가 좋았다면

생각 나누기

이 시를 읽고 든 생각, 떠오른 기억을 자유롭게 남겨 주세요. 서로의 감상을 존중해 주세요.

아직 남겨진 생각이 없어요. 첫 마음을 남겨 주세요.

출처

195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공유마당에서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