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무제

한용운1879–1944

1 가며는 못 갈소냐 물과 뫼가 많기로 건너고 또 넘으면 못 갈 리 없나니라 사람이 제 안이 가고 길이 멀다 하더라 2 물이 깊다해도 재이면 밑이 있고 뫼가 높다해도 헤아리면 위가 있다 그보다 높고도 깊은 것은 님뿐인가 하노라 3 개구리 우는 소리 비오실 줄 알았건만 님께서 오실 줄 알고 새 옷 입고 나갔더니 님보다 비 먼저 오시니 그를 슯어 하노라 4 청산(靑山)이 만고(萬古)라면 유수(流水)는 몇 날인고 물을 좇아 산에 드니 오간 사람 몇이런고 청산(靑山)은 말이 없고 물만 흘러 가더라 5 산(山)에가 옥(玉)을 캘까 바다에 가 진주(眞珠) 캘까 하늘에 가 별을 딸까 잠에 들어 꿈을 꿀까 두어라 님의 품에서 기룬 회포 풀리라 6 저승길 머다한들 하나밖에 더 잇는가 사람마다 끊어내면 하룻 길도 못 되리라 가다가 길이 없거든 도라올까 하노라 7 이순신(李舜臣) 사공 삼고 을지문덕(乙支文德) 마부 삼아 파사인(破邪釼) 높이 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 하야 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8 산중에 해가 길고 시내 위에 꽃이 진다 풀밭에 홀로 누워 만고흥망(萬古興亡) 잊재더니 어디서 두서너 소리 「벅국벅국」하더라 9 물이 흐르기로 두만강(豆滿江)이 말을 것가 뫼가 솟앗기로 백두산(白頭山)이 무너지랴 그 사이 오가는 사람이야 일러 무엇 하리오 10 비낀 볕 소등 위에 피리 부는 저 아해야 너의 소 일 없거든 나의 근심 실어주렴 실기야 어렵지 않지만 부릴 곳이 없노라 11 이별(離別)로 죽은 사람 응당히 많으리라 그 무덤의 풀을 베여 그 풀로 칼 만들어 고적한 긴 그 밤을 도막도막 끊으리라 12 밤에 온 비바람이 얼마나 모지든고 많고 적은 꽃송이가 가엽시도 떨어졌다 어찌타 비바람은 꽃필 때에 많은고 13 시내의 물소리에 간 밤 비를 알리로다 먼 산의 꽃 소식이 어제와 다르리라 술 빚고 봄옷 지어 오시는 님을 맞을까 14 꽃이 봄이라면 바람도 봄이리라 꽃 피자 바람 부니 그럴듯도 하다마는 어지타 저 바람은 꽃을 지워 가는고

님을 찾는 길, 그리움, 봄비와 꽃을 노래한 시조 열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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