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가을의 풍경

이상화1901–1943

맥 풀린 햇살에 번쩍이는 나무는 선명하기 동양화일러라. 흙은, 아낙네를 감은 천아융(天鵝絨) 허리띠 같이도 따습어라. 무거워 가는 나비 나래는 드물고도 쇠(衰)하여라, 아, 멀리서 부는 피리 소린가! 하늘 바다에서 헤엄질하다. 병(病)들어 힘없이도 섰는 잔디풀—나뭇가지로 미풍(微風)의 한숨은, 가는(세(細)) 목을 메고 껄덕이어라. 참새 소리는, 제 소리의 몸짓과 함께, 가볍게 놀고 온실(溫室) 같은 마루 끝에 누운 검은 괴의 등은, 부드럽게도 기름져라. 청춘(靑春)을 잃어버린 낙엽(落葉)은, 미친 듯, 나부끼어라, 서럽게도, 길겁게 조으름 오는 적멸(寂滅)이 더부렁거리다. 사람은, 부질없이, 가슴에다, 까닭도 모르는, 그리움을 안고, 마음과 눈으로, 지나간 푸름의 인상(印象)을 허공(虛空)에다 그리어라.

맥 풀린 가을 햇살 아래 나무, 나비, 고양이, 낙엽을 한 폭 그림처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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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조』 창간호, 1922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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