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다리 위의 사람

박인환1926–1956

애증과 부채를 자기 나라에 남기고 암벽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에 놀라 바늘과 같은 손가락은 난간을 쥐었다. 차디찬 철의 고체(固體) 쓰디쓴 눈물을 마시며 혼란된 의식에 가라앉아버리는 다리 위의 사람은 긴 항로 끝에 이르른 정막한 토지에서 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풍파와 고절은 그칠 줄 몰랐고 오랜 세월을 두고 DECEPTION PASS에도 비와 눈이 내렸다. 또다시 헤어질 숙명이기에 만나야만 되는 것과 같이 지금 다리 위의 사람은 로사리오 해협에서 불어오는 처량한 바람을 잊으려고 한다. 잊으려고 할 때 두 눈을 가로막는 새로운 불안 화끈거리는 머리 절벽 밑으로 그의 의식은 떨어진다. 태양이 레몬과 같이 물결에 흔들거리고 주립공원 하늘에는 에메랄드처럼 빤짝거리는 기계가 간다. 변함없이 다리 아래 물이 흐른다 절망된 사람의 피와도 같이 파란 물이 흐른다 다리 위의 사람은 흔들리는 발걸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아나코테스에서

애증과 빚을 나라에 두고 다리 위에 선 사람.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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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55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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