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석류

정지용1902–1950

장미(薔薇)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숫불, 입춘(立春)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석류(柘榴)열매를 쪼기여 홍보석(紅寶石)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透明)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金)붕어 처럼 어린 녀릿 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우리 들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것이어니. 자근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쌍. 옛 못 속에 헤염치는 힌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銀)실, 은(銀)실, 아아 석류(柘榴)알을 알알히 비추어 보며 신라천년(新羅千年)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입춘 밤 화롯불 곁에서 석류알을 비추어 봅니다. 작은 사랑의 기억과 신라 천년의 하늘이 겹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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