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꽃과 벗

정지용1902–1950

석벽(石壁) 깎아지른 안돌이 지돌이, 한나절 기고 돌았기 이제 다시 아슬아슬하구나. 일곱 걸음 안에 벗은, 호흡이 모자라 바위 잡고 쉬며 쉬며 오를 제, 산꽃을 따, 나의 머리며 옷깃을 꾸미기에, 오히려 바빴다. 나는 번인(蕃人)처럼 붉은 꽃을 쓰고, 약하여 다시 위엄스런 벗을 산길에 따르기 한결 즐거웠다. 새소리 끊인 곳, 흰 돌 이마에 휘돌아 서는 다람쥐 꼬리로 가을이 짙음을 보았고, 가까운 듯 폭포가 하잔히 울고, 메아리 소리 속에 돌아져 오는 벗의 부름이 더욱 고왔다. 삽시 엄습해 오는 빗낱을 피하여, 짐승이 버리고 간 석굴을 찾아들어, 우리는 떨며 주림을 의논하였다. 백화(白樺) 가지 건너 짙푸르러 찡그린 먼 물이 오르자, 꼬리같이 붉은 해가 잠기고, 이제 별과 꽃 사이 길이 끊어진 곳에 불을 피고 누웠다. 낙타털 케트에 구긴 채 벗은 이내 나비같이 잠들고, 높이 구름 위에 올라, 나릇이 잡힌 벗이 도리어 아내같이 예쁘기에, 눈뜨고 지키기 싫지 않았다.

벗과 함께 오른 가을 산, 석굴에서 떨며 보낸 밤. 우정이 꽃처럼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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