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한 번쯤 공책에 옮겨 적어 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어요. 집에 굴러다니는 볼펜 하나, 줄 공책 한 권이면 됩니다.
눈으로 읽을 때는 한 편을 읽는 데 삼십 초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손으로 적으면 오 분이 걸리고, 그 오 분 동안 시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상하게도 그렇습니다.
왜 손으로 적으면 다르게 읽힐까
손은 눈보다 느립니다. 느리니까 건너뛸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는 '대충 이런 뜻이구나' 하고 넘어가던 낱말도, 적을 때는 한 글자씩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인이 왜 하필 이 말을 골랐는지, 왜 여기서 줄을 바꿨는지가 손끝에 걸립니다.
윤동주의 「서시」를 옮겨 적다 보면, 마지막 줄 앞에 빈 줄이 하나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됩니다. 앞의 여덟 줄이 다짐이라면, 빈 줄을 건너 혼자 떨어져 있는 마지막 한 줄은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밤하늘입니다. 눈으로만 읽을 땐 그 빈 줄이 잘 안 보입니다. 적어 보면 펜이 거기서 한 번 멈춥니다.
처음이라면 짧은 시부터
처음부터 긴 시를 고르면 중간에 지칩니다. 열 줄 안팎의 시로 시작하세요. 김소월의 「먼 후일」은 필사하기에 참 좋은 시입니다. '잊었노라'가 네 번 되풀이되는데, 손으로 적다 보면 그 말을 적을 때마다 조금씩 무게가 달라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잊었다고 할수록 잊지 못했다는 고백이 되니까요.
옛 맞춤법은 그대로 적어 보세요
옛 시에는 '얼골', '아츰', '스치운다' 같은 지금과 다른 표기가 나옵니다. 필사할 때 이걸 요즘 맞춤법으로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데, 한 번쯤은 그대로 적어 보세요. 그 시대 사람들이 말을 어떻게 소리 냈는지가 손에 남습니다. 옛 표기가 낯설다면 아래 글이 도움이 될 거예요.
하루 한 편이면 충분합니다
필사는 많이 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좋습니다. 자기 전에 한 편, 아니면 아침에 커피 물 끓는 동안 한 편. 한 달쯤 지나 공책을 넘겨 보면 그 자체로 나만의 작은 시집이 되어 있습니다. 날짜를 옆에 적어 두면 '그날 내가 왜 이 시를 골랐지' 하고 돌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옮겨 적은 시가 마음에 오래 남으면, 그 느낌으로 내 문장 하나를 써 보는 것도 좋습니다. 남의 시를 따라 적던 손이 어느새 내 말을 적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쓴 문장은 시한잔에 '한 모금'으로 남겨 주셔도 좋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