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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밤에 펴 보는 시

시한잔 · 2026년 9월 27일

눈은 감았는데 머릿속은 자꾸 낮으로 돌아가는 밤이 있습니다. 그럴 때 휴대폰을 들면 영상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어느새 새벽 세 시입니다. 오늘 밤엔 화면 밝기를 조금 낮추고 시 한 편만 읽어 보면 어떨까요. 밤을 노래한 옛 시는 대체로 조용하고, 천천히 읽힙니다.

모두가 다시 잠드는 밤 — 윤동주 「밤」

윤동주가 스무 살 무렵 쓴 짧은 시입니다. 외양간 당나귀가 울자 아기가 깨고,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줍니다. 그리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듭니다.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는 한밤의 소동인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깨어난 것들이 하나씩 다시 잠드는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 집 한구석에 누워 있는 것 같거든요.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한키 담아 주고,
어머니는 애기에게
젖을 한모금 먹이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드오.
윤동주, 「밤」 전문 읽기

달빛에 불려 나간 마당 — 정지용 「달」

잠이 안 와서 괴로운 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지용의 「달」 속 화자는 달빛에 눈이 번쩍 뜨여 부르는 사람도 없는데 마당으로 나갑니다. 잠을 설친 게 아니라 달에게 불려 나간 거예요. 한밤의 마당이 호수처럼 차오른다는 표현을 읽으면, 창밖을 한번 내다보고 싶어집니다.

미욱한 잠과 벼개를 벗어나
부르는이 없이 불려 나가다.
한밤에 홀로 보는 나의 마당은
호수(湖水)같이 둥그시 차고 넘치노나.
정지용, 「달」 전문 읽기

잠 못 드는 시간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밤을 구경하는 시간'으로 바꿔 보는 것, 이 시가 건네는 작은 요령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줄 누군가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잠이 안 오는 밤에는 대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김영랑은 그런 마음을 '내 마음을 아실 이'라고 불렀어요. 어딘가에 나를 나처럼 알아줄 사람이 있다면, 속에 감춰 둔 눈물과 보람을 보배처럼 꺼내 드리겠다고요. 이 시를 읽으면 외로움이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같은 마음으로 밤을 지샌 사람이 백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게 위로가 되니까요.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전문 읽기

읽고 나서는

한 편을 다 읽었으면 휴대폰을 엎어 두세요. 마음에 남은 한 줄을 속으로 몇 번 되뇌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잠이 옵니다. 시한잔의 '듣기'에서 낭송을 틀어 두고 눈을 감는 것도 방법이에요. 목소리가 시를 읽어 주는 동안에는 머릿속 낮의 일들이 끼어들 틈이 줄어듭니다.

낭송 틀어 두고 눈 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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