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감았는데 머릿속은 자꾸 낮으로 돌아가는 밤이 있습니다. 그럴 때 휴대폰을 들면 영상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어느새 새벽 세 시입니다. 오늘 밤엔 화면 밝기를 조금 낮추고 시 한 편만 읽어 보면 어떨까요. 밤을 노래한 옛 시는 대체로 조용하고, 천천히 읽힙니다.
모두가 다시 잠드는 밤 — 윤동주 「밤」
윤동주가 스무 살 무렵 쓴 짧은 시입니다. 외양간 당나귀가 울자 아기가 깨고,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줍니다. 그리고 밤은 다시 고요히 잠듭니다.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는 한밤의 소동인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깨어난 것들이 하나씩 다시 잠드는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 집 한구석에 누워 있는 것 같거든요.
달빛에 불려 나간 마당 — 정지용 「달」
잠이 안 와서 괴로운 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정지용의 「달」 속 화자는 달빛에 눈이 번쩍 뜨여 부르는 사람도 없는데 마당으로 나갑니다. 잠을 설친 게 아니라 달에게 불려 나간 거예요. 한밤의 마당이 호수처럼 차오른다는 표현을 읽으면, 창밖을 한번 내다보고 싶어집니다.
잠 못 드는 시간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밤을 구경하는 시간'으로 바꿔 보는 것, 이 시가 건네는 작은 요령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줄 누군가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잠이 안 오는 밤에는 대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김영랑은 그런 마음을 '내 마음을 아실 이'라고 불렀어요. 어딘가에 나를 나처럼 알아줄 사람이 있다면, 속에 감춰 둔 눈물과 보람을 보배처럼 꺼내 드리겠다고요. 이 시를 읽으면 외로움이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같은 마음으로 밤을 지샌 사람이 백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게 위로가 되니까요.
읽고 나서는
한 편을 다 읽었으면 휴대폰을 엎어 두세요. 마음에 남은 한 줄을 속으로 몇 번 되뇌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잠이 옵니다. 시한잔의 '듣기'에서 낭송을 틀어 두고 눈을 감는 것도 방법이에요. 목소리가 시를 읽어 주는 동안에는 머릿속 낮의 일들이 끼어들 틈이 줄어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