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한 편

옛 시 서가

나는 그를 불사르노라

박용철1904–19381번 읽힘

나의 애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가지신 그이를. 한줌 재나 남을까! 불에 살라 올리노라. 검고 사나운 땅이 그에게 알맞지 않아 하얀 연기를 다만 멀리 높이 살라 올리려. 하늘조차 파랗지 못하고 희부옇게 흐리어, 검고 붉고 누른 골짜기 주름에 한줄기 생기있는 시냇물도 흐르지 않고, 벌거벗은 가지에 숨어 있던 바람만이 가만 오르는 흰 연기를 가만있지 못하게 나부껴주느니. 삼천광년(三千光年)보다 더 머언 곳으로 그를 잃어버리고 련금학자(鍊金學者)도 아닌 나는 잿속에서 무슨 금을 찾을 거 냐? 중한 보배구슬을 손수 산산 깨트리는 세상없는 귀한 향을 진흙에 파묻어버리는 심사는. 쓰나쓴 쓸개를 씹는 대로 삼켜가며 험상한 바위에 몸을 퍼더버리고 앉아 있노니.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것을 가진 이를 불에 살라 보내는 사람. 잿속에서 무슨 금을 찾겠느냐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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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40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공유저작물입니다. 본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원문을 따랐습니다(띄어쓰기·한자 읽기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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