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저 ─ 황막(荒漠)한 벌판을 희게 덮어 다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無慈悲)한 바람 때없이 지나는 잔 칼질 길에 피투성이 낙엽(落葉)이 가득 쌓인 대지(大地)의 젖가슴 포오트랩 빛의 상처(傷處)를.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저 ─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 다오. 사해(死骸)의 한지(寒枝) 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의 옷과 청춘(靑春)의 육체(肉體)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구리는 검은 얼굴을. 눈이여! 퍽퍽 나려 다오 태양(太陽)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記憶)을 묻어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 위에 내 영(靈)을 내 영(靈)을 쉬이려는 희원(希願)이오니.
상처 입은 들판을 흰 눈이 덮어 주기를 비는 시. 그 위에 다시 해가 빛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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